"암보다 더한 질병의 이름..."포기"
1, 얼마 전 담임 목사님께서 언급하셨던 장애인 인권 운동의 큰별 강영우 전 백악관 차관보께서
췌장암으로 타계하셨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미국 백악관 차관보까지 올랐던 그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였지요.
그는 열네 살 때 눈을 다쳐 실명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일을 전후해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십니다.
그러자 열일곱 살이던 누나가 어린 세 동생을 부양하느라 봉제 공장에 취직해 일하다 과로로 쓰러져 세상을 뜨고 맙니다.
결국 남은 3남매는 뿔뿔히 흩어져 강영우는 맹인재활원으로,
열세 살 되었던 남동생은 철물점 직원으로,
아홉 살의 여동생은 보육원으로 가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합니다.
2, 하지만 맹인재활원에 들어 간 강영우는 기를 쓰고 공부해 1968년 서울 맹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 교육학과에 입학하고 "맹인이 무슨 대학???"이라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깨드립니다.
마침내 1972년 각고의 노력 끝에 차석으로 졸업한 후 그는 한미재단과 국제로타리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멀쩡한 사람도 유학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용케도
1976년 피츠버어그대 교육철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그 후 강영우 박사는 1977년부터 1999년까지 22년 동안 미국 인디애나 주 정부의 특수교육국장과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특수교육학 교수등으로 재직한 뒤 마침내 2001년 차관보급인 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됩니다.
말 그대로 " Impossible(불가능한)"이라는 단어에 점 하나를 찍으면 "I`m possible.(나는 할 수 있다)"로
바뀌듯이 그는 숱한 삶의 고비고비마다 그냥 점이 아니라 땀방울과 핏방울을 찍어 가며 길을 걸었습니다.
3, 강영우 박사뒤에는 항상 아내 석은옥씨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강 박사가 다니던 맹학교에서 처음 만났답니다.
당시 강박사는 학생이었고, 석씨는 그곳에 봉사 나온 숙명여대생이엇지요.
강박사는 누이같은 그녀에게 프로포즈했고, 결혼해서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큰 아들 폴(진석)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 안과 교수로 일하면서 역대 미대통령을 진료해 온
" 워싱턴 안과의사연합" 8인 멤버 중의 한 사람이자 워싱턴 포스트가 선정한 2011년 "수퍼닥터"에 선정되었고,
둘째 크리스토퍼(진영)는 변호사로 미 민주당 원내총무실의 최연소 수석법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답니다.
4, 남부러울 것 없던 강영우박사에게 지난 연말 시한부 췌장암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길어 야 두달 정도밖에 살 수 없는 치명적인 선고를 받습니다.
그는 지인들에게 담담하게 e-메일을 보냅니다.
감사 편지였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은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였고,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후 임종을 앞두고 두 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해 보기 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가슴 속 깊이 새긴 채로 자라 준 너희들이 고맙고,
너희들의 아버지로 반평생을 살아 왔다는 게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언제나" 나의 어둠을 밝혀 주는 촛불." 이라 부르던 아내에게는
"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는 말로 마지막 연서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늘의 자신이 있게 한 국제로타리재단에 25만달러를 장학금으로 기부했지요.
5, 강박사는 생전에 "nowhere"란 단어에 스페이스바 한 번 치면 "now here."로 바뀐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습니다.
"어디에도 (돌파구가)없다."는 말이 "지금 여기."로 바뀌듯이 그 어떤 절망과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그에게 포기란 암보다 무섭고 나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아 온 인생은 보통 사람들보다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나쁜 일때문에 내 삶에는 더
좋은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6, 지난해 12월 말 버지니아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강박사는
"삶과 죽음은 하나님이 아시고, 결정하는 것이다. 죽음은 나쁜 게 아니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
이라고 말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과 긍정을 이웃과 가족에게 남긴 강영우박사는
그가 말했던 "아름다운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장례식은 버지니아주 센터빌의 중앙장로교회에서 3월 4일 추도 예배로 치러집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행정기획국 장로 김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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